죽음과 결합된 아름다움

이선영(미술평론가)

서인혜의 작품에서는 화면 하나하나가 마치 투명한 그릇이라도 되는 양, 혈액이 연상되는 밀도 높은 액체가 투명한 매질 속에서 퍼져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더 시간이 지나면 균질 화 되겠지만, 작가는 과정중의 형상을 여기저기 풀어놓는다. 균질화란 해결, 또는 죽음이다. 유기체적인 비유에서 균질화란 해결보다는 죽음을 떠오르게 한다. 주변과 구별될 수 있는 경계가 없는 것에서 우리는 무생물과 같은 죽음을 본다. 경계가 해체되는 과정은 죽음의 시작이다. 그러나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언제든 자리를 바꿀 수 있는 삶의 짝패이다. 서인혜의 작품에서 붉은색으로 나타나는 혈액은 죽음 보다는 생명, 정지보다는 과정에 더 가깝다. 순간에 고착된 이미지를 완화시키기 위해서 작가는 비슷한 스타일의 시리즈 작품을 함께 배열한다. 작품마다 붉은 물감이 퍼져나가는 형태가 달라서 여러 개를 같이 놓고 보면 어떤 시간적 흐름이 느껴지는 것이다. 

[협력의 진화] 전(한원미술관)에서의 설치전경

그 밀도 높은 액체는 혈액, 특히 생리 혈을 떠오르게 하는데, 그것들은 종이 보다는 천위에 있을 때 보다 직접적이다. 최근 한 기획전에서 선보인 작품에서는 낡은 재봉틀과 붉게 칠한 천, 그리고 평면 작품들을 함께 걸어놓아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낡은 재봉틀은 이제 갓 서른을 넘긴 작가보다 더 오래된 세대를 가리킨다. 그러나 작가는 재봉틀을 붉은 실과 연결시켜 과거의 질곡과 모순이 현재에도 지속됨을 강조한다. 재봉틀 옆에 비치된 책제목 [여자의 일생]–할머니의 유품이다—처럼, ‘여자의 일생’은 한 여성이 태어날 때마다 되풀이 된다. 물론 사회가 진보하고 있으니 만큼 똑같은 반복이 아니라 차이가 있는 반복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서인혜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피의 이미지는 보다 근본적인 것을 가리킨다. 혈연은 종족번식의 본능이라는 자연의 법칙 외에 사유재산을 계승하는 적자(嫡子)의 확보 문제와 깊이 얽혀 있다. 

진보 또는 발전이란 생산양식이나 생산력의 발전을 말하는데, 그에 걸 맞는 신체적 운명의 변화가 일어났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고 낳고 돌보는 역할에 상당부분 투자해야 하는 ‘자연적’ 운명을 가지고 있다. 서인혜의 요즘 작품들은 오래되었으면서도 새삼스러울 수밖에 없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그림이나 사물을 통해, 그리고 텍스트의 제시를 통해 총체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녀가 다루는 사물은 대체로 낡았다. 지금은 구하기도 힘들 세로줄 인쇄본 소설책이나 재봉틀이 대표적이다. 한 페이지씩 떼어 네 가필을 해 벽에 걸어 놓은 [여자의 일생]은 가독성은 떨어지지만, 어김없이 ‘여자’라고 집단적으로 호명된 성이 있다. ‘영원한 여성’ 즉 문명과 비교되는 여성에는 자연과의 끈이 선명하다. 이 자연은 착취와 소유를 포함한 대상화를 넘어서 다시 맥락화 되어야 할 것이기도 하다. 거기에다 한국화 재료 자체가 가지는 고풍스러움이 가세한다. 

여성이야기가 오래되었다 함은, 인류 최초의 불평등을 계급보다 성에서 먼저 일어났다는 유물론자들의 신빙성 있는 가설 때문이고, 새삼스럽다는 것은 그 많은 선구자들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불평등은 여전하다는데 있다. 평등은 자유의 문제와 더불어 거듭된 도전이 아니고서는 결코 ‘자연스럽게’ 해결되지 않을 난제로 남아있다. 페미니즘 예술 또한 이러한 도전에 가담해 오고 있다. 서인혜가 이러한 주제를 풀어나가는데 영감을 얻은 계기는 김치를 만들면서였다. 반으로 자른 배추의 형태나 그 위에 붉은 양념이 버무려지는 모습, 이후에 김치가 숙성되는 과정 등에서 여성성을 본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형태적 유사성 외에, 김치 담그기를 포함한 여성의 가사노동에 대한 평가절하에 대한 사회적 관심사가 보태졌다. 가사노동은 작가가 어릴 때부터 해왔던 예술 활동과 더불어 제대로 된 대가를 받지 못하는 행위, 즉 경제학자들에 의해 ‘그림자 노동’으로 정의된 부분이다. 

인류와 노동의 재생산을 위해 사회적으로 꼭 필요하지만, 사적 영역에 감춰져 있던 것들이 하나둘 발언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히 출산파업이라고 해야 할 출생률의 저하에 대해 사회적 차원의 고민과 해법이 시도되기 시작했다. 한국사회에서 가사노동의 가치가 한 달에 170만원 정도로 계산되었다는 기사를 얼마 전에 보았다. 그렇게 계산되었다고 해서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자영업자의 평균 소득이 170만원 정도 된다니까 꽤 높은 평가를 받은 셈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여자가 남자의 3배 더 많이 가사노동을 한다는 내용이다, 그림자 노동으로서의 예술 문제는 어떠한가. 물론 예술 관련 직업이 있지만, 그것은 작업과도 별도인 사회적 노동에 속한다. 예술적 작업을 지속하기 위해서 ‘젊은 여자’가 할 만 한 아르바이트—여성의 그림자 노동은 사적 영역이 아닌 공적 영역에서도 평가 절하되기 마련이다–들을 전전하면서 작가의 문제의식은 더욱 깊어졌을 것이다. 

몇 년 전의 작품은 여성의 성기가 암시되는 등 보다 직접적인 발언이 앞서기도 했지만, 요즘 작업은 성의 문제를 보다 포괄적인 맥락에 놓고자 한다. 흐르고 번지고 얼룩지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체액은 종이나 천에 표현한다. 아교 대신에 안료의 고착제로 사용되는 콩즙은 색을 좀 더 부드럽게 만들기 때문에 붉은 물감의 흐름은 피를 넘어서 몸의 느낌으로 확장된다. 광목천에 채색하여 설치의 형식으로 제시되는 붉은 평면들은 ‘뫼비우스 띠로서의 육체’(엘리자베스 그로츠)의 여러 양상을 보여준다. 벽에 공중에, 또는 다른 사물들과 연관되어 펼쳐지는 다양한 표면들은 (여성을 억압하는)유기적 질서가 해체된 상태를 말한다. 표면들에 얼룩진 액체의 이미지에서 여성의 몸은 또한 유체로도 비유된다. 이 체액은 경계를 넘나든다. 인류학자 메리 더글러스가 [순수와 위험: 오염과 터부 개념 분석]에서 개진한 바처럼, 경계를 위반하는 것은 불순하다. 

순수와 불순은 절대적 구분이 아니라 상대적 구분이다. 즉 경계가 구분은 만든다. 인류사회는 오염을 야기하는 위반을 금기시해왔다. 현대미술은 이러한 금기를 활용하여 선정적인 방식으로 수면 아래의 종교적 힘을 부활시키곤 한다. 메리 더글러스의 논의를 더욱 확장시킨 철학자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이다. 엘리자베스 그로츠는 [뫼비우스 띠로서의 육체]에서 메리 더글라스와 크리스테바가 유사하게 사물, 실체, 객체의 견고성을 와해시키는 체액의 역할을 인식한다고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피, 토사물, 타액, 담즙, 고름, 땀, 눈물, 월경, 정액 등은 제각기 통제의 정도를 달리하면서 스며들고 흐르고 통과하며 입구와 출구를 찾아가고 상호교환의 통로나 세계와 교통하는 길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크리스테바는 [공포의 권력]에서 여전히 주변적인 액체지만 오염시키지 않는 두 체액으로 눈물과 정액을 지적한다. 반면 월경의 피와 배설물은 불결한 체액이다. 경계를 위반하는 ‘아브젝트’ 또한 성적 차이가 있는 것이다. 

크리스테바는 사회 속에서 오염의 의식화 과정은 성별의 엄격한 구별에 대한 강박 관념을 반영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남성을 여성보다 우위에 두는 것에 대한 강한 관심이다. 누군가 한계에서 아브젝트를 인격화하면서 정화작용을 약속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여성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체와 부분의 관계가 해체되어 가는 현대에서 승화의 모델은 점차 사라진다. 동일시할 전체나 완전성, 정상성이 사라진 사회에서 승화는 윤리적 당위에 머문다. 감춰져야 할 것이 편재하는 서인혜의 작품은 승화와는 거리가 있다. 삶의 귀감이 될 만 한 형이상학적 관념이 승화의 몫이라면, 그 반대로 아래로의 흐름에는 퇴행이나 도착이 자리한다. 이 흐름은 단지 삶의 반대 항으로서의 죽음이 아니라 죽음까지 포함하는 삶을 말한다. 크리스테바는 [공포의 권력]에서 아름다움과 죽음의 결합이야말로 글쓰기의 조건이라고 말한다. 서인혜의 작품은 크리스테바가 내건 조건이 특히 여성적 글쓰기(작품)에 해당됨을 알려준다.

나무 껍질을 입는 몸

이문정(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전시장에 들어서자 커다란 영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클로즈업된 할머니의 얼굴, 거칠어 보이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나무가 나란히 모습을 드러낸다. 반대편에는 균형을 맞추듯 병풍을 연상시키는 설치물이 마주 보고 서 있다. 화려하지만 은근한 색채의 문양이 가득하다.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본다. 그 정체는 모호하지만 거친 표피만은 선명한 나무조형물을 전환점 삼아 우측으로 돌아서니 오랜 시간을 품은, 누군가의 시간과 기억이 담긴 사진과 물건들이 발견된다. 아늑한 방을 구경하는 기분이다. 어둡지만 따뜻한 불빛은 전시장의 분위기를 고요하게 이끈다. 한적하고 느긋하다. 무슨 이유인지 해가 질 무렵의 풍경이 떠오른다.

전시 ‘나무 껍질을 입는 몸’(2020)에서 서인혜는 세월을 담아내는 할머니의 피부와 나무 껍질, 종이를 개념적으로 엮어 인간의 삶과 생명의 기운, 자연의 섭리를 고민했던 자신의 여정을 보여준다.

작업의 시작은 작가의 어머니였다. 작가는 음식점을 운영하던 어머니가 매일 김치를 담그는 모습을 지켜보며 여성의 노동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족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어머니. 어머니를 생각하다 어머니의 어머니인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렇게 이어진 작업. 한지와 천에 붉은색을 입힌 뒤 설치한 <버무려진 이야기>(2017), <버무려진>(2018), 그리고 영상 작업인 <버무려진 노동>(2017), <열무>(2019)는 가정과 사회에서 요구하는 역할을 따르며 삶을 꾸려나가는 어머니의 노동을 담담한 어조로 보여주었다.

이후 서인혜는 오랫동안 노동해온 여성의 피부와 의복으로 시선을 돌렸고, 이때부터 할머니들이 입고 있는 옷의 문양이 작품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작가는 할머니들이 실제로 입고 있는 옷의 사진을 찍어 그것을 재현했는데,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할머니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삶의 희로애락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 결과물인 <삼산 할매 가죽>(2019), <굳은살과 물렁막>(2019), <버무려진 막>(2019) 등의 작품에서는 한층 깊어진 시간의 층이 전달된다.

이번 전시에서 서인혜는 몸빼라고 불리는, 할머니들이 즐겨 입는 일바지의 문양이 그려진 <몸빼12곡병>(2020)을 선보였다. 옷은 피부에 얹어진다. 또 하나의 피부와 같다. 피부로 대표되는 인간의 껍질. 그것은 생명을 담고 있으나 언젠가 생명의 기운을 놓칠 인간 몸의 은유이다.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관하는 보물 상자이기도 하다. 작가는 굳은살이 박이고 주름이 생긴 할머니들의 손으로 대표되는, 다사다난했던 삶을 견뎌낸 인간의 피부가 오랫동안 살아온 나무의 껍질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전의 보호수가 있는 괴곡동과 대사동에 거주하는 할머니들을 만났고, 할머니들이 입고 있는 일바지의 문양을 수집했다.

이번에는 천이 아닌 한지에만 문양을 그렸다. 한지가 더 피부에 가까운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할머니들의 상징과 같은 일바지의 문양이 한지에 옮겨지고, 작가는 묵직한 시간을 품은 할머니의 피부를 담아내기 위해 한지의 표면이 일어날 정도로 여러 번 문질러 가며 색을 올렸다. 그런데 작가가 그려낸 문양의 색은 실제 옷보다 어둡다. 삶의 흔적이 묻어있는 일바지를 생각하며 그렸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작가의 손길이 가면 갈수록 한지의 표면은 나무 껍질을 닮아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작가는 일바지의 무늬로 그려낸 개인 삶의 역사화를 이용해 병풍을 만들었다. 병풍은 의례를 상징하는 사물이지만 그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지는 않는다. 이런 이유로 작가는 병풍이 마치 어머니 같다고 느꼈다.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는 생활복이자 노동복인 일바지의 무늬가 그려진 병풍이 어떤 의미를 생성하게 될지 궁금한 마음도 있었다. 그렇게 노동과 의례, 일상과 비일상, 편안함과 엄숙함이 교차된다.

<몸빼12곡병>을 제작하면서 서인혜는 문양을 수집하는 데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으나 작가는 할머니들과 최대한 자주 만나 긴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고 층층이 쌓인 삶의 기억 일부를 받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인 할머니들의 물건과 메모, 대화를 촬영한 동영상, 대화 내용을 적은 글이 병풍 뒤에 자리했다. 전시된 물건들은 자신의 기억을 관객에게 전하고, 자신도 또 하나의 기억을 저장하게 되었다.

할머니들이 전해주는 삶의 이야기는 우리가 기대하는 감정을 흠뻑 전달한다. 따뜻하다. 그리고 애틋하다. 이런 감정이 있는 그대로 전달되는 이유가 있다. 타인의 삶이 자신으로 인해 정형화되는 것을 경계하는 작가의 작업 태도 덕분이다. 서인혜는 할머니들과 만남을 가지면 가질수록 의도적으로 의도가 담기지 않은 대화를 나누려 노력했다. 대화하는 동안은 자신의 작업을 위한 만남이라는 사실을 잊으려 애썼다. 무엇보다 할머니들과 진심으로 교감하고 싶었고, 할머니들을 작업의 소재로 대상화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이 할머니들의 삶 속으로 녹아들길 원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할머니들과의 대화를 촬영한 영상에는 작가가 자주 등장하여 소통이 일어나는 과정을 과장 없이 보여준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인혜는 점점 한 인간으로서 할머니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의 노동에서 시작된 작업은 이제 인간 삶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으로 확장된다. 이 세상에 태어나 생각하고 느끼며 노동하고 소통하다 언젠가 세상을 떠나는 인간 존재에 대해 숙고하게 된 것이다.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웅상목(雄常木)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웅상에서 나온 가죽>(2020)에서 확인할 수 있듯 작가는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져온 인간과 자연의 연결 고리를 추적하고 상상한다.

한편 <Da capo aria>(2020)는 작가적 사유의 반경이 넓어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작품이다. <Da capo aria>는 작가가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에서 마주하는 풍경들, 700년 된 천연기념물인 괴곡동의 느티나무, 그리고 작가가 만난 할머니의 모습을 촬영한 영상으로 이뤄져 있다. 여기에 함께 등장하는 갑천의 물살은 할머니가 살아온 인생의 시간, 그보다 더 긴 느티나무의 시간, 나아가 흐르고 흐르는 자연의 섭리를 압축하는 상징이 된다. 서인혜의 작품에서 느티나무로 대표되는 자연은 항상 우리를 지켜봐 왔다. 아주 먼 옛날 우리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생성과 소멸은 끝없이 반복되는 자연의 질서였다.

불현듯이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먼 시간이 흘러 작가가 할머니의 나이가 되었을 때 괴곡동의 느티나무 앞에 서면 어떤 감정을 느낄까? 그때의 감흥은 작업에 어떻게 스며들까? 작가는 다음 작업에 자연 그리고 자연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교감을 어떻게 담아낼까? 인간 존재에 대해 어떤 질문을 던질까?

현재 작업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작가는 “최종적으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숙고하는 것”이라 답했다. 이는 작가가 할머니들과의 교감 속에서 잊고 있었던 인간의 삶을 아우르는 근원적인 자연의 질서와 원리를 기억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숨을 가다듬고 <Da capo aria> 속 느티나무를 다시 한번 바라본다. 변함없이 긴 시간의 흐름이 전달된다. 삶은 그렇게 지속되고 흘러가기를 반복한다.

Body Dressed in Tree Bark 

Lee Moonjung (Art Critic and Director of Leepoétique)

The first thing visitors see as they enter the exhibition hall is a large video screen. It shows the close-up face of an elderly woman and a tree that looks rough but emits warmth. On the opposite side stands an installation work that resembles a folding screen as if to balance with the video screen. It is full of brilliant patterns in subdued colors. Walking further into the hall and turning right from an obscure tree sculpture with rough but vivid skin, you can find old photographs and items carrying someone’s time and memories cherished for years. You may feel as if you are visiting a cozy room. The dim but warm light adds tranquility to the hall. You feel calm and relaxed. Somehow, it reminds you of the landscape around the time of sunset.

In her exhibition titled ‘Body Dressed in Tree Bark (2020),’ Seo In Hye shows her own itinerary of a journey in which she contemplated on the energy of human living and life as well as the provision of nature by conceptually linking the elderly woman’s skin, which carries her years, with tree bark and paper.  

The artist’s work started from her mother. Looking at her mother who runs a restaurant making kimchi every day, she began pondering on women’s labor. Thinking about her mother led her to remember her maternal grandmother. Her thoughts progressed to installation works such as The Seasoned Story (2017) and The Seasoned (2018) created by coloring hanji (traditional Korean paper handmade from mulberry trees) and fabric in red, as well as to video works The Seasoned Labor (2017) and Young Radish Kimchi (2019), which plainly described the labor of a mother who manages life carrying out her role demanded by the family and society.  

After that, the artist turned her eyes to the clothes and skin of women who have worked hard for years, and started to show the patterns from the clothes commonly worn by elderly women in her works. She took pictures of their clothes to reproduce them, chatting with the women while photographing them and getting a bit closer to the joys and sorrows of life in the process. Maybe that is why her resulting works such as Samsan Granny’s Skin (2019), Callus and Soft Skin (2019) and The Seasoned Skin (2019) present even deeper layers of time.  

In the exhibition, Seo presented 12-piece Folding Screen of Momppae (2020) based on the patterns from loose work pants called momppae, which is commonly worn by elderly women. Clothes are worn on the skin. They are like additional skin. Skin represents the outer layer of human beings. It is a metaphor for human body that carries life but will lose the energy of life someday. It is also the treasure chest that stores the traces of time in their entirety. The artist felt that human skin, which has endured a lifetime of ups and downs and is represented by the callused and wrinkled hands of elderly women, resembles the bark of a tree that has lived on for a long time. That is why she met old women living in Goegok-dong and Daesa-dong where protected-trees are located and collected the patterns from the work pants they were wearing.

This time, she painted the patterns just on hanji, and not on fabric. It was because hanji feels more like the skin. After transferring the patterns from the pants on hanji, she applied colors rubbing the surface of the paper multiple times until it became fluffy, in an attempt to represent the skin of the old women carrying the heavy weight of time. But the colors of the patterns painted by the artist are darker than those of the actual pants, for she wanted to show work pants smeared with the traces of life. Thus, the longer she worked on the painting, the more the surface of the paper resembled tree bark. How much time passed? The artist created the folding screen by historicizing the lives of individuals based on the patterns from work pants. Folding screens symbolize rituals, but they don’t take the central spots. This is why the artist felt that a folding screen is like a mother. She was also curious as to what kind of meanings the folding screen, showing the patterns from the pants that are worn both daily and for work, will generate. Likewise, the artwork represents labor and rituals, what is daily and what is non-daily, and comfort and solemnness intersecting with each other.  

While working on 12-piece Folding Screen of Momppae, Seo did not just concentrate on collecting patterns. Although it wasn’t easy for her, she met the elderly women as often as possible, chatted with them and managed to gather some of their memories of lifetime piled up in numerous layers. As a result, personal items and memos of the elderly women as well as videos and transcripts of the conversations are exhibited at the back of the folding screen. The displayed items will convey their memories to the visitors and, in turn, the artist will also get another memory that she will keep. 

The stories of life from the elderly women deliver the sentiments that we expected in full. They are warm and affectionate. There’s a reason why these sentiments are transferred intact. It is thanks to the artist’s work attitude of taking precaution not to standardize other people’s lives based on her own view. As she continued meeting with the elderly women, she tried hard to avoid intentional conversations. While talking to them, she made efforts to forget that she was meeting them as part of her work.  Above all, she wanted to sincerely sympathize with them and not to objectify them as the subjects of her work. She wanted herself to be absorbed in the women’s lives. Therefore, the artist often appears and communicates with them in the video of their conversations. 

As time went by, Seo could manage to look at the lives of the elderly women as individual persons. Her work that started from her mother’s labor has extended to an exploration into the true nature of human life. It is a contemplation on the human existence that is born into the world, thinks, feels, works, communicates and then leaves the world. As exemplified by The Skin from Xiongchang tree (雄常) (웅상에서 나온 가죽) (2020) inspired by Xiongchang tree (雄常木) from ‘The Classic of Mountains and Seas (山海經),’ the artist searches for and imagines the ancient link between human and nature.

Meanwhile, Da capo aria (2020) is another work that lets us witness the process in which the scope of her artistic thoughts broaden. <Da capo aria> consists of scenes she encountered on her way to meet an elderly woman, including a 700-year-old zelkova tree in Goegok-dong designated as a natural monument, and video clips of the woman she met. The waves of the Gapcheon Stream seen in the video become a symbol that condenses the time the old woman has lived, the time zelkova tree has lived which is even longer, and the provision of nature that flows on and on. In Seo’s works, nature represented by the zelkova tree has always looked upon us. From the ancient times, long before we were born, creation and destruction have been the natural order which is endlessly repeated.   

Questions arise suddenly. When, after a long time, the artist reaches the age of the elderly woman, what will she feel when she stands before the zelkova tree in Goegok-dong? How will the sensation permeate her work? How will she reflect her communion with nature and people living in the flow of nature to her next work?  What kind of questions will she pose on human existence?

To the question of what she is focusing on most in her current work, the artist says that it is, ultimately, the contemplation on the relationship between nature and human. It may be because she remembered the underlying natural order and law of nature embracing human life, which she had forgotten, based on the communion with the elderly women. I breathe deeply, and look at the zelkova tree in Da capo aria. I can feel the flow of time that continues to be long. Life continues and flows on like that.

<버무려진 방> 전시 전경, 한원미술관, 광목 천에 분채 채색, 대나무, 재봉틀, 의자, 가변크기, 2018
버무려진 막, 한복 안감 천에 분채 채색, 단채널 영상,
190x360cm(10pieces), 가변크기, 2019

The seasoned skin, Korean pigment on silk, single channel video,
190x360cm(10pieces), variable installation,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