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파편, 정은영 2021

완전한 파편: 서인혜의 기호 항해와 환유적 서사

정은영(미술사학 박사,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1. 부서진 존재들

《구멍 난 자리에서 춤을 추는》 전시의 주요 무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부서진 채 흩어져 있는 파편과 그 사이를 휘돌며 흐르는 해금 연주다. 파편들은, 모든 부서진 존재가 그러하듯, 바스러지며 깨지던 순간의 충격을 고스란히 간직한 모습이지만, 알록달록 꽃무늬로 단장한 한쪽 표면만은 애처로울 정도로 고운 낯을 하고 있다. 잘게 쪼개져 사방에 흩뿌려진 단편들부터 몸통을 일으켜 곧추서 있거나 서로에게 기대어 비스듬히 가로누워 있는 조각들까지, 각양각색의 형태에 몸을 가누는 자세도 다양하다.
파편들의 무리는 < 니로>, < 슬기둥과 싸랭>, < 느너느>와 같은 다소 생경한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전통악기 연주에서 주요 골격음을 꾸며주는 보조 장식음인 ‘시김새’의 부호와명칭들을 들여온 것이다.1) 가만 보니 이 부서진 존재들은 해금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모양새다. 무대를 마주하듯 코너에 설치된 싱글 채널 스크린에서 15분 길이의 해금 연주가 흘러나오고 있다. 연주자의 모습이 검은 배경에 묻혀 있어 마치 암흑을 뚫고 솟아오른 두 팔이 현을 누르고 활을 긋는 듯하다. 하지만 악기가 들려주는 건 장단이 아니라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다. 흩어진 파편들의 떨림에 맞장구를 치는 건지 혹은 스러진 존재들의 혼을 불러 모으는 건지, 작은 울림통은 뭐라 이름 짓기 어려운 소리를 끊임없이 토해낸다. 정음(正音)이 아닌 미분음(微分音)만을 짚어 연주한 탓이다.2) 슬프게 흐느끼는가 싶더니 무언가 웅얼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뱉지 못한 말이 목구멍에 걸려 꺼억거리나 싶더니 깊은 곳에서 터져 올라온 비명이 골짜기의 메아리처럼 진동하며 퍼지기도 한다. 해금이 속칭 ‘깽깽이’라 불리는 이유를 알법한 소리다. 현과 활이 서로를 비비고 문질러 발생하는 마찰음 그대로여서, 선율이나 가락이라기보다 울림이나 진동에 가깝다.
어딘가로부터 떨어져 나온 파편과 무어라 이름짓기 어려운 마찰음은 교묘하게 닮은꼴이다. 둘은 모두 부서진 조각들인데, 하나는 공간 속 연장의 형식으로 또 하나는 시간 속 파동의 흐름으로 부서져 흩어진다. 우리는 이 조각들을 보고 그것이 떨어져 나온 전체를 상정하고는, 떼어진 조각을 이내 불완전한 부분으로, 반면 그 이전에 있었으리라 생각되는 어떤 것을 완전한 전체로 단정하곤 한다. 곧이어 관념 속에서 완전무결해진 전체는 거대한 동일자(同一者)로 떠올라 근원의 자리를 차지하고, 실제 현실에서 먼저 있었던 부서진 조각들은 이질적인 파생물로 전락해버린다.
그러나 불완전한 부분에 앞서는 완전한 전체란 처음부터 없었다. 모든 존재는 애초에 부서진 채로 세상에 던져지기에 오직 부서진 조각들만이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선율 이전에 울림이 있었고, 가락 이전에 진동이 있었으며, 선율이나 가락 또한 미세한 소리 조각들의 연결일 따름이다. 완전한 전체는 언제나 조각난 부분 이후에 사후적으로 만들어진다. 그 어떤 것도 부서지지 않고는 생겨나지 않는다. 파편은 완전하다.

2. 신화적 상상력과 환유적 서사


“중심 소리가 되지 못한 모호한 음 덩어리들, 무언가로부터 부서져 정체를 알 수 없는 파편들”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올려놓은 이번 전시는 여와(女媧)의 천지창조에 얽힌 중국 고대의 ‘보천(補天) 신화’를 모티브로 삼았다.3) 우주의 사극(四極)이 무너져 하늘에 커다란구멍이 생기자 최초의 여신인 여와가 다섯 빛깔의 아름다운 돌을 다듬고 구워 그 구멍을 깁고 자라의 다리를 잘라 기둥을 세워 하늘을 떠받쳤다는 전설이다. 작가는 이 신화 속 이야기에서 오색 돌로부터 떨어져 나온 파편들, 하늘을 메우는 데에 쓰이지 못하고 홀로 버려진 편린들을 상상했다 한다.4) 그렇게 떨어져 나온 조각들은 어디에도 끼워 맞출 자리가 없다. 모호한 지대에 뭉쳐 있는 소리 덩어리들이 온전한 자리를 부여받지 못한 것과 같다. 작가는 자신의 상상 속에 떠오른 그 부서진 조각들을 신화적 시공간에 출현시켜 정체불명의 소리에 맞춰 초혼(招魂)의 춤을 추게 했다. 하지만 서인혜의 신화적 상상은 실제와 무관한 가공의 허구가 아니다. 《구멍 난 자리에서 춤을 추는》의 기반을 이루는 것은 신화와 역사, 상상과 현실이 정교하게 교차하며 치밀하게 직조된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천지개벽의 순간 하찮게 버려진 존재들을 상상하며 그 존재들에게 고유의 자리와 소리를 부여한 이번 전시는 여성의 평가절하된 노동에 대한 성찰적인 탐구나 할머니들의 삶의 체험에 대한 민속지학적(ethnographic) 연구 등 최근 수년간 작가가 진행해온 리서치 기반 프로젝트의 최정점이자 그 대단원(dénoument)이라 할 수 있다.5) 특히 두어 해 전부터 대구 가창군과 대전 괴곡동의 할머니들을 인터뷰하며 수집한 삶의 이야기와 형식적 요소들은 이번 전시에서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예컨대 작가는 《나무 껍질을 입는 몸》(2020)에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진 굳은살과 딱딱해진 피부, 그런 노쇠한 몸을 감싸고 있는 울긋불긋한 옷의 꽃무늬와 일바지의 문양에 주목하여, 자연적인 신체의 표피와 사회적으로 코드화된 피복을 교차시키는 일종의 ‘껍질막의 사회인류학적 탐구’를 시도한 바 있다. 나아가 할머니들의 개인적 삶에 드리워진 사회적 차원의 거대 서사(grand narrative)를 언급하기 위해 병풍 이면의 개별적인 이야기와 병풍 표면의 몸빼 바지 패턴이 공존하도록 구축한 <몸빼 12곡병>을 설치하기도 했다. 그간의 프로젝트에 비추어 보면 이번 전시의 ‘춤추는 파편들’이 바스러지고 이지러진 몸통과 안쓰럽도록 고운 꽃무늬 외피를 지니고 있는 연유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구멍 난 자리에서 춤을 추는》은 신화와 현실을 넘나드는 텍스트의 규모에 있어서나 태초와 현재를 횡단하는 시간적 진폭에 있어서 이전 작업을 훌쩍 넘어선다. 규모와 진폭이 커진 것은 무엇보다 서사적 텍스트를 관통하며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기호들의 환유적인 흐름때문이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각인된 몸에서 태곳적 하늘의 구멍을 메우는 돌 조각으로, 제자리를 잃고 기능을 상실한 파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의 덩어리로, 선율을 꾸며주는 장식 시김새의 낯선 부호에서 그 부호의 기능을 체현하는 파편들의 의태적인 몸짓으로,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기호학적 연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횡적으로 펼쳐진다. 횡적으로 확장하는 환유적인 서사에서는 그 어떤 것도 다른 어떤 것을 대체하거나 대신하지 않는다. 요컨대 오색돌 파편이 부서진 몸을 대체한다거나 흩어진 조각들의 무리가 모호한 음의 덩어리로 치환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고유의 특이성을 품고 있는 각각의 존재들, 거기에서 유래한 이 환유적인 기호들은 문맥의 인접성이나 연상에 의한 연합에 힘입어 돌연히 출현하고 연이어 결합하면서 끊임없이 증식하며 서로서로 공명한다. 무릇 공명이란 서로 다른 존재들이 자체의 차이와 강도를 지닌 채로 짝을 이룰 때 비로소 일어나는 것이 아니던가. 인접한 존재들과의 바로 그 공명을 통해 비로소 기호는 그 속에 품고 있던 의미의 어두운 안주름을 밖으로 밝게 펼쳐내며 또 다른 기호를 불러낸다. ‘춤추는 파편들’의 환유적 서사는 그렇게 기호들의 무한 연쇄를 만들어낸다.

    3. 기호 항해 혹은 이야기꾼의 여정

    서인혜의 텍스트는 그 자체가 고대 신화와 거대 역사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이 되어 영겁의 시간과 체험된 역사를 가로지르며 넓게 흩뿌려져 있다. 하지만 그렇게 흩뿌려진 파편들이 착 지하는 곳은 언제나 지금 여기의 ‘역사적 현재’이다. 서인혜의 환유적 서사가 그저 의미 없이 부유하는 기표의 연속으로 전락하지 않는 이유는 끊임없이 미끄러지는 파편적인 텍스트들이 신화적 상상의 먼 길을 돌아 최초의 출발지인 우리 자신의 이야기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작 가는 해체의 묘수를 쓰는 대신 공감의 힘을 발휘하여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이름 없는 존재 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 면에서 서인혜는 일찍이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진정한 서사문학가로 상찬 했던 이야기꾼을 닮았다. ‘생생한 말의 영역’인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전달하는 이야기 꾼은 근대의 인쇄술과 함께 출현한 소설가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소설의 산실이 ‘고독한 개인’ 이라면, 이야기의 원천은 ‘구두로 전승된 집단의 기억’이다. 구전되는 경험을 듣고 전달하는 이야기꾼은 ‘이야기된 것을 보존하려는 관심’을 지닌 자,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재현할 가능 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6) 이름 없이 사라지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우리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인혜는 분명 그런 이야기꾼이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 방식은 근대 이전의 이야기꾼과는 상당히 다 르다. 감각들의 공명을 신뢰하는 작가는 부서진 존재들의 삶의 역정을 환유적인 기호들로 엮 어 형상과 소리, 비언어적인 감각의 덩어리로 펼쳐내기 때문이다. 그것은 흡사 멀고 긴 기호 항해에서 돌아온 자가 들려주는 우리 자신에 대한 낯선 이야기와 같다. ‘춤추는 파편들’과 함께 이번 전시에 포함된 은 그런 기호 항해의 여정을 담 담하게 전해주는 듯하다. 나선형 무늬가 선명한 조개 패각과 하얀 모래 등 서해 바닷가에서 발견한 사물들을 모아 놓은 설치와 실제 여정에서 마주친 순간적인 이미지들을 교차시킨 영상 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작품은 하나의 기호 @에서 촉발되었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할머니들에겐 인터넷 세계에서 주소지를 확정해주는 @, 흔히 골뱅이라 부르는 그 기호가 없어서, 작가는 언제나 그들을 직접 찾아가 얼굴을 마주 보며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다.7) ‘@가 없어서 멀고도 가까워질 수 있었던’ 그 경험은 곧이어 골뱅이의 동심원에서 손가락의 지문으로, 나선형으로 말려 있는 배꼽에서 시간의 결이 각인된 장소와 흔적으로 미끄러지고, 밀물과 썰물이 드나드는 바다, 조석(潮汐)을 일으키는 달의 인력, 결코 볼 수 없는 달의 뒷면에 대한 상상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지도 속에 지금 여기의 좌표를 찾아가는 서정적인 항해로 이어진다. 이름 없이 사라지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복원하기 위해 서인혜는 오늘도 우리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부서진 조각들, 그 낯선 기호들을 채집하고 있을 것이다. 작가는 수수께끼를 푸는 자가 아니라 수수께끼를 만들어내는 존재다. 시공을 오가는 아득한 기호 항해에서 돌아와 그녀가 들려줄 수수께끼 같은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