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발견하기 위한 여정> 신승오

<’나’를 발견하기 위한 여정>
신승오(페리지갤러리 디렉터)
서인혜는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에서의 위치와 정체성에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위치에서 오랜 시간 동안 부여된 특정한 역할에 대해 살피는 작업을 해왔다. 초기의 작업인 <버무려진>에서는 자신의 어머니가 김치를 담그는 행위에 주목하고 그 노동의 이유와 흔적들을 회화 작업과 더불어 재봉틀을 사용하여 이어 나가는 설치 작업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자신을 포함한 우리나라 여성에게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진 정체성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였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의 작업은 자연스럽게 이전 세대의 여성인 할머니에 대한 관심으로 전이되었다. <버무려진 막>과 <몸뻬12곡병>은 대구, 대전 지역의 할머니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삶의 궤적에서 드러나는 소소한 노동과 그들의 삶의 이야기와 더불어 우리나라 할머니들이 즐겨 입는 화려한 문양의 속칭 몸뻬 바지를 연결해 여성과 노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다루었다. 이렇게 그는 또다시 생명체인 인간으로서 늙어서 소멸해가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노인의 피부와 고사한 나무의 피부를 연결하는 <웅상에서 나온 가죽>과 같은 설치와 영상을 통해 우리 사회가 급속하게 노령화된 상황에서 나타나는 우리가 모두 맞이할 수밖에 없는 운명적 시간과 이에 따라 나타나는 인간의 속성에 대해 연구하였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자신이 속한 여러 범주의 시공간속에서 ‘나’는 어떻게 규정되어 나가는가에 대한 질문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 나간다. 그가 이야기하는 ‘나’의 위치에 따른 정체성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여된 속성들과 내가 새롭게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정체성이 충돌하는 지점을 끊임없이 찾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를 먼 곳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에서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 어떤 대상이 가지는 정체성의 본질을 직시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번에 제작한 2채널 영상작업인 <무너진 모퉁이의 노래>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배경으로 등장하는 노래와 이야기에 등장하는 특정한 모티프를 가져왔다. 그것은 인터뷰하던 할머니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조용필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다. 우리가 조용필의 대표적인 노래인 이 곡에서 느끼는 정체성은 고독한 한 남자의 독백과 같은 읊조림으로 이루어지는 독특한 형식에 기인한다. 여기에 더해 작가는 이 곡의 작사를 맡은 사람은 여성이며, 헤밍웨이의 단편소설인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뭔가 서로 어울리지 않을 법한 이야기가 표범이라는 대상을 통해 자신이 이전부터 주목하였던 할머니들의 표범 무늬 의복과 연결되고 있음을 인지하게 되면서부터다. 그는 표범과 그 무늬에 대한 조사를 통해 일반적으로 표범무늬가 사용되는 것이 형편없는 싸구려 의복부터 아주 고급스러운 의복까지 다양하게 걸쳐 있는 상황을 중립적인 그 어떤 것이라는 점에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모든 계급과 위계를 뛰어넘어 있는 것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렇게 작가는 표범 그 자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인간에 의해 의도치 않게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젠더, 계급이 가진 상징적 연결고리인 점을 이번 작품의 중심 이야기로 착안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작가는 개별의 존재들이 사용하는 표범과 그 무늬에서 발생하는 의미 차이를 통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무대로 기능하게 되는 것을 상상하게 되었다. 그리고 주된 대상인 표범이 인간의 인식 체계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획득하면서 주변부로 밀려나는 동시에 보편적인 의미로서 굳어져 나가는 단계를 밟는다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이번 작업을 구성하였다.

첫 번째 영상에서 표범은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여러 의미를 드러내는 장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면 한 생명체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멸종했고, 전 세계적으로도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는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는 동물이라는 점, 그리고 표범의 무늬가 사용되어온 역사적인 의미와 노래나 소설과 같은 대중문화의 대상으로서의 모습을 사회적 약자와 연결시켜 파편적으로 보여준다. 두 번째 영상에서는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와 함께 원곡의 사운드를 길게 늘여 가사 그 자체에만 집중하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장치들은 두 영상을 교차하고 가로지르면서 작가가 엮어내는 파운드 푸티지와 노래에 담겨 있는 고급과 저급, 신비로움과 고독함과 같은 이미 만들어진 의미를 담고 있는 표면적 상징의 권위를 해체한다. 이러한 영상을 통해 그 안에 감추어진 저 멀리 닿을 수 없었던 표범의 정체성이 가진 위치와 본질에 다가가고자 하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 작가의 ‘나’를 찾아가는 여정의 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고 있는데, 이를 엿볼 수 있는 것이 작품의 후반부에서부터 언급되는 반 고흐에 대한 이야기나 영화로 만들어진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에서 작가(소설가)의 길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이 같은 장면들은 작가가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그 대상이 옮겨가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작가가 천착하고 있는 정체성은 사회적으로 부여된 틀 뿐만이 아니라 페르소나와 같이 스스로 만든 어떤 장치들에 의해 그 핵심이 가려지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러한 위장은 사회생활에 순조롭게 순응하고 갈등 없이 살아가기 위한 유용한 방식이지만 하나의 인격체로서는 오히려 자신의 본질적인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어지게 되는 부작용도 나타나게 된다. 그렇게 본다면 작가의 작업에 등장하는 표범의 무늬는 강자이든 약자이든 현실의 모습과는 다르게 위장하는 도구로써 사용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예를 들면 귀족들의 의복에 나타나는 부와 권력을 과시하는 것,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약함을 가리고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화려한 무늬의 옷을 입는 것과 같이 이러한 표범의 무늬는 내부와 외부의 상반되는 의미의 충돌이 일어나는 기묘한 대상이다. 어찌되었든 작가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결국 두 가지의 경우 모두 자신의 정체성과 역할로 고정하게 만드는 틀이 존재한다는 점이며, 이러한 표피와 이를 걷어낸 그 안에 잠재된 핵심적 본질이다. 이번 작업에서는 여기에 더해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가의 정체성도 어쩌면 이와 같은 특정한 틀에 의해 규정된 성향을 순진하게 따라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진다. <무너진 모퉁이의 노래> 장면들에서 언급되는 우리 사회가 예술가라는 존재에 대해 특히 ‘반 고흐’와 같은 고독한 창작의 삶을 천재 작가에 대한 환상으로 덧씌우거나 여기에서 더 나아가 자유로운 창작 활동과 상업적인 태도에서의 갈등과 같은 것들을 대비시켜 둘 중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작가는 이번 작업을 통해 이러한 예술가에게 보편적으로 부여되는 성격을 해체하고 단지 그들이 어떤 창작적 행위를 해나가는 과정 그로 인해 한 개인으로서 쌓여가는 내면의 감각에 집중한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까지 그가 지속해서 만들어가는 작업의 과정은 결국 어떤 고정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변해가는 한 개인의 정체성의 변화를 발견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씩 되짚으면서 껍질을 벗겨내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진행되어 나간다. 정리해 보자면 이번 작품은 다양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표범의 이야기에서 파생되는 것들을 통해 사회에서 바라보는 예술가의 정체성 다시 말해 서인혜라는 예술가의 정체성에 대해 스스로 던지는 반성적 질문이다. 이는 작품의 제목과 같이 견고한 어떤 경계가 무너져 내릴 때 비로소 그 단서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작업에 등장하는 표범과 같이 중심에서 밀려난 존재, 사라지는 존재, 가려져 있는 존재들에 관심을 가지는 동시에 예술가에 대한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심의 시선을 던진다. 또한 작가는 이를 견고한 대상을 바라보지 않으며, 이러한 대상을 작업을 해나가면서 계속해서 미끄러지게 만들고, 자신과 연결된 교집합으로 나타나는 본질적 감각에 연결하는 시도를 한다. 여기서 그가 드러내고자 하는 본질적 감각은 어떤 표면과 그 이면에 존재하고 있는 이질적인 것들의 충돌에서 나타나는 것을 있는 그대로 살피고 우리에게 전달하는 행위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업은 얼핏 작가의 자조적인 이야기로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이어져 공감할 수 있는 확장된 이야기로 나타난다. 그리고 작가는 이를 위해 어떤 답도 내리지 않고 그 대상을 여러 방식으로 음미하면서 작업하고 있다. 이렇게 그는 ‘나’는 어떤 존재인지 직시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이 규정할 수 없는 감각의 본질을 계속해서 표범이 홀로 외로이 사냥을 하듯이추적하고 있다.